
개봉일 : 2020년 7월 9일
개요 : 드라마 · 대한민국 · 110분
평점 : 8.47
관객수 : 89만명
출연 : 신혜선, 배종옥, 허준호
영화 ‘결백’은 단순한 법정 스릴러의 틀을 벗어나, 인간관계의 복잡한 감정과 사회 시스템의 불완전함까지 담아낸 깊이 있는 드라마다. 억울한 누명을 쓴 어머니를 위해 진실을 파헤치는 변호사 ‘정인’의 이야기는 단순히 법적 정의 실현의 과정이 아닌, 한 가족이 다시 서로를 이해하고 회복해가는 감정적 여정을 담고 있다. 배우 신혜선은 ‘정인’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정이 공존하는 입체적인 인물을 완성하며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신혜선의 집중력, 모녀 관계의 감정선을 완성하다
‘결백’의 중심에는 ‘정인’이라는 인물이 있다. 서울에서 잘나가는 변호사로 일하던 정인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독살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믿기 어려운 현실을 마주한다. 살인 용의자로 체포된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의 어머니 ‘화자’. 뇌졸중 후유증으로 언어 장애를 앓고 있는 그녀는 혐의를 부인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인은 오랫동안 어머니와 소원하게 지내왔다. 어린 시절 가정폭력과 가난 속에서 자란 그녀에게 어머니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고, 원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드러나는 단서들과 어머니의 행동 속에서 정인은 ‘이 여자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직감하고, 결국 사건을 직접 조사하기로 결심한다.
신혜선은 이 인물을 연기하며, 심리적인 내면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녀는 이성적인 논리로 사건을 분석하는 동시에, 억눌려온 감정이 조금씩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한다. 특히 법정 장면에서는 분노와 눈물이 동시에 깃든 복합적인 감정을 눈빛과 표정, 말투 하나하나에 담아냈다.
이 영화에서의 감정 연기는 과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절제된 톤으로 이어지는 감정선이 관객에게 더 깊은 몰입을 제공한다. 신혜선의 눈빛은 그 어떤 대사보다 강력하며, 딸로서의 연민과 변호사로서의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복잡한 심리를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말 없는 엄마, 말 많은 사회…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정인이 쫓는 진실은 단순한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점차 지역사회와 정치의 부패 구조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마을 유지이자 시장 후보인 ‘추인회’는 과거 어머니와도 얽힌 인물로, 사건과 모종의 연관이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의 주변 인물들 역시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거나 외면하며, 공동체 전체가 진실의 편에 서기보다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 급급한 현실을 드러낸다.
한편, 엄마 ‘화자’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해는 더 커지고, 그녀의 침묵은 죄책감처럼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며 점차 밝혀지는 과거의 사실들은 이 침묵이 단순한 무력함이 아니라, 한 여자가 삶 속에서 견뎌온 고통과 포기, 체념의 상징임을 알려준다. 정인은 그런 엄마의 시간을 되짚으며, 잊고 있었던 가족의 의미를 되찾아간다.
이처럼 ‘결백’은 살인사건이라는 외형을 갖췄지만, 그 안에는 오랜 침묵 속에서 억눌렸던 감정의 폭발, 가족 간의 오해와 화해, 그리고 무너진 정의에 대한 회복이라는 서사가 진하게 녹아 있다. 엄마와 딸이라는 모녀 관계는 영화 전반을 이끄는 정서적 축이며, 이 관계가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영화는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연출과 서사, 그리고 배우의 조화로 완성된 한국형 감정 법정극
감독 박상현은 ‘결백’을 통해 감정과 현실, 법리와 심리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탁월하게 연출한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클리셰에 기대지 않고, 인물 간의 관계를 천천히 쌓아가며 긴장감을 유지하는 방식은 오히려 더 현실감 있고 묵직하다.
배종옥이 연기한 어머니 ‘화자’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축이다. 대사 없이, 오로지 눈빛과 표정, 몸짓만으로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역할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녀는 그 어려움을 섬세한 표현력으로 완벽히 소화해냈다. 그녀의 눈물, 떨리는 손가락 하나하나에 한 여성의 억울함과 고통이 진하게 스며든다.
조연 배우들의 연기 역시 이 영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허준호는 악역이지만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비겁하고 욕망에 찌든 인간으로서의 복합적인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또한 정인의 동료와 지역 경찰, 주민 등 주변 인물들 역시 각자의 시선과 입장을 통해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며 극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결국 ‘결백’은 단지 “범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진실을 볼 의지가 있는가?”, “가장 가까운 사람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감정이 많지만 절제된 연출, 현실적인 갈등 구조, 뛰어난 연기력까지 모든 요소가 고르게 어우러진 이 작품은 한국형 법정 드라마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렸다.
결론: '결백'은 끝나도 질문은 계속된다
‘결백’은 단순히 억울한 누명을 벗기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 여성이 진실을 마주하면서 과거의 감정, 상처, 오해를 되짚고 자신과 가족을 다시 받아들이는 여정이다. 특히 정의와 감정 사이의 균형, 그리고 딸과 엄마 사이의 다층적인 감정의 진폭은 단순히 법정극으로 정의하기에 아쉬운 인간적인 깊이를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이 흐르고 나면 관객은 ‘진짜 범인은 누구인가’보다, ‘나는 누군가의 결백을 믿어본 적 있는가’, ‘내가 외면한 진실은 없었는가’라는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바로 그 점에서 ‘결백’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인간과 관계, 사회의 책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성숙한 영화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