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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사용설명서 다시보기 (로맨틱코미디, 감성, 매력)

by 불로거 2025. 11. 12.

남자사용설명서 포스터

 

개요 : 멜로/로맨스 · 대한민국 · 116분
개봉 : 2013.02.14.
평점 : 7.10
관객 : 50만명
출연 : 이시영 오정세 박영규 김정태 이원종 배성우 

 

 

2013년에 개봉한 영화 ‘남자사용설명서’는 로맨틱코미디 장르가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제작되던 시기의 작품입니다. 이시영과 오정세라는 의외의 주연 조합, 그리고 연애심리를 유쾌하게 꼬집는 독특한 설정으로 개봉 당시에도 화제가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이 영화의 진가가 더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라, 연애에 대한 불안, 기대, 욕망, 자존감 같은 심리를 웃음 뒤에 잘 녹여낸 작품이죠. 특히 요즘처럼 로맨틱코미디가 드문 시대에, 이 영화는 다시 꺼내보기 좋은 레트로 감성과 현실 공감을 동시에 갖춘 보기 드문 영화로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로맨틱코미디의 공식, 그리고 파괴

‘남자사용설명서’는 기본적인 로맨틱코미디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그 공식을 깨뜨리는 장치를 곳곳에 배치한 것이 특징입니다. 영화는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평범한 여성 ‘최보나’와, 잘생기고 인기도 많은 스타 셰프 ‘이승재’의 만남으로 시작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느 로코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이 영화는 독특하게도 ‘연애코칭북’이라는 소재를 중심에 배치해 연애를 전략과 기술의 영역으로 끌어옵니다.

주인공 보나는 연애에 서툴고 상처받은 과거를 지닌 인물로, 어느 날 우연히 ‘남자사용설명서’라는 비밀 매뉴얼을 얻게 됩니다.

이는 이른바 ‘남자를 꼬시는 방법’을 조목조목 정리한 심리 매뉴얼로, 이를 통해 보나는 이승재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하죠. 이 설정은 연애를 전쟁처럼 그리던 당시 드라마나 영화들의 분위기와 맞물리면서도, 과장되고 유쾌한 연출로 이를 비틀고 풍자합니다.

영화는 현실적인 연애의 불안과 불완전함을 다루지만, 그것을 심각하게 다루지 않고 철저하게 코믹한 상황과 빠른 템포, 만화적 연출로 풀어냅니다. 오정세의 깔끔하면서도 어딘가 2% 부족한 매력, 이시영의 생활연기와 능청스러운 리액션은 이 영화의 중심축을 견고하게 지탱해줍니다.

감독은 전형적인 ‘로맨스’보다도 연애라는 상황 자체의 과도함, 기대감, 긴장감을 풍자적으로 묘사합니다. ‘사용설명서’라는 설정은 남녀 관계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조종할 수 있다는 착각을 꼬집으며, 실제로는 사람 마음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죠.

또한 이 영화는 기존 로코 장르의 판타지를 가져오되, 이를 현실적 불안으로 끌어내리며 색다른 재미를 줍니다. 이를테면 남주가 여주의 진심을 알게 되며 벌어지는 상황은 매우 유치하고 웃기지만, 그 안에는 ‘진짜 나를 들키고 싶지 않은 심리’라는 누구나 공감 가능한 감정이 숨어 있습니다.

 

보이는 웃음 뒤에 숨겨진 감성

‘남자사용설명서’는 전반적으로 유쾌하고 밝은 분위기의 영화지만,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예상 외로 진중한 메시지와 감성의 결이 존재합니다. 특히 연애 초보자 혹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서사는 관객에게 의외의 공감과 위로를 안겨줍니다.

여주인공 보나는 상사에게 늘 치이고, 외모나 성격 면에서 자신감이 부족한 캐릭터입니다. 그녀는 과거의 연애 실패로 인해 상처를 입고, 사랑을 포기하려는 순간에 ‘남자사용설명서’를 만나죠. 이 매뉴얼은 표면적으로는 웃음을 유도하는 도구이지만, 사실상 ‘사랑받기 위한 방법을 외부에서 찾는 심리’를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보나는 이 설명서에 집착하며 자신의 본모습이 아닌 가짜 자아로 누군가를 사로잡으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은 가볍고 코믹하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입을 하게 만듭니다.

연애에서 ‘진짜 나’를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 거짓된 모습으로 관계를 시작하면 어떤 결과를 맞게 되는지를 은근히 알려주죠.

이승재 역시 완벽한 듯 보이지만, 실은 타인의 기대 속에서 살아가는 불안정한 인물입니다. 그의 고독과 가면 뒤 감정은 후반부로 갈수록 드러나며, 연애가 단순한 설렘이 아니라 ‘진정성’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감정적으로 가장 몰입되는 장면은, 보나가 매뉴얼을 버리고 자신의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장면입니다. 이는 사랑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용기’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며,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남자사용설명서’는 웃음을 유도하면서도, 그 이면에는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잘 포착한 작품입니다. 현실 연애에 지친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통해 가볍게 웃으며 내 감정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10년 후 다시 보는 B급 감성의 매력

‘남자사용설명서’는 개봉 당시 과장된 연출, 비현실적인 설정, 오버스러운 대사로 인해 다소 B급 영화로 평가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보면, 오히려 이 영화의 이러한 요소들이 현대 콘텐츠 트렌드와 기묘하게 어울립니다. 짧은 숏, 빠른 전개, 과장된 유머는 유튜브나 웹예능의 문법과 유사해져 지루할 틈 없이 즐길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오정세의 캐릭터 연기는 지금 봐도 뛰어납니다. 그의 캐릭터는 단순한 훈남 셰프가 아니라, 감정 표현에 서툰 현대 남성의 모습을 잘 담아냈습니다. 이시영 역시 통통 튀는 연기력과 개성 있는 표정 연기로 로맨틱코미디 여주인공의 전형을 벗어나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영화 전반에 흐르는 패러디, 과장된 광고 장면, 비정상적인 현실 묘사는 일종의 풍자이자 해학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는 2020년대 콘텐츠에서 추구하는 ‘메타 유머’의 선구적 형태로 평가할 수 있으며, 이러한 시도는 당대에는 생소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트렌디하게 느껴집니다.

지금의 시선으로 이 영화를 다시 보면, 그동안 놓쳤던 디테일한 심리 묘사와 캐릭터 성장의 흐름이 더 명확하게 보입니다. 특히 엔딩 부분에서 두 사람이 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은, 이전 장면들에서 쌓아온 감정의 여운을 잘 정리해줍니다.

현재 ‘남자사용설명서’는 넷플릭스, 웨이브 등 OTT 플랫폼에서 다시 시청 가능하며, 단순한 향수 영화가 아닌 새로운 시선으로 해석될 수 있는 로코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다시 보기 딱 좋은 타이밍입니다.

‘남자사용설명서’는 웃음을 유도하는 로맨틱코미디이지만, 그 속에 현대인의 불안한 연애심리와 자아성찰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다시 보면 캐릭터의 성장과 감정의 진정성이 더욱 깊이 느껴지고, B급 감성조차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로맨틱코미디가 사라져가는 지금, 이 영화는 단순한 재미를 넘어 우리에게 ‘사랑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소중한 영화입니다. 오늘 하루, 이 영화를 다시 꺼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