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요 : 드라마 · 대한민국 · 110분
개봉 : 2020.10.21.
평점 : 9.01
관객수 : 157만명
출연 : 고아성 이솜 박혜수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1995년 한국 대기업의 말단 여직원 세 명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독특한 설정의 영화입니다. 고아성, 이솜, 박혜수라는 개성 강한 세 배우가 중심을 잡고, 여성 서사와 사회 풍자, 그리고 성장 드라마를 절묘하게 녹여낸 이 작품은 개봉 당시 큰 공감과 찬사를 받았습니다. 단순한 레트로 감성이 아닌, 오늘날에도 유효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키워드 중심으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고아성의 서사 중심축, 정유나의 성장
영화의 중심 인물인 고아성(정유나 역)은 입사 8년 차 말단 사무직 직원입니다. 그녀는 업무 능력이 뛰어나고 회사 내부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지만, 단지 여직원이라는 이유로 복사, 커피 심부름, 회의록 정리에 갇혀 있는 현실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 정유나가 공장 폐수 유출 사건을 우연히 목격하면서, 영화는 급격하게 전개됩니다.
고아성은 이 캐릭터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균형 있게 연기합니다. 그녀의 눈빛에는 늘 현실에 대한 분노와 체념, 그리고 희망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특히 조직 내에서 ‘입 다물고 있어야 산다’는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정의와 윤리를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진정한 주인공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정유나의 캐릭터는 90년대 여성의 삶을 상징하면서도 동시에 오늘날 직장인들에게도 깊은 공감을 줍니다. “커피만 타는 직원이 아닙니다”라는 대사는 단순한 한 줄의 대사를 넘어, 직장 내 차별에 대한 강력한 문제 제기로 작용합니다. 고아성은 이 인물을 통해 목소리 내기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며, 영화의 메시지를 단단히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솜과 박혜수, 개성과 연대의 힘
이솜(이자영 역)과 박혜수(심보람 역)는 각자의 스타일로 극의 균형을 잡아주는 인물입니다. 이자영은 품질관리팀에서 일하며 냉소적이고 직설적인 성격을 가진 캐릭터로, 영화 속에서 현실을 가장 잘 꿰뚫어보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이솜은 특유의 시크함과 강단 있는 연기로 이자영의 복잡한 내면을 훌륭하게 표현해냅니다.
심보람 역의 박혜수는 IT부서에서 일하는 캐릭터로, 숫자와 컴퓨터에 능하지만 내성적인 성격으로 존재감이 약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그녀는 정보 수집과 기술을 통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박혜수의 연기는 조용하지만 섬세하며, 눈에 띄지 않던 인물의 저력을 자연스럽게 드러냅니다.
이 세 인물은 서로 완전히 다른 성격과 배경을 지녔지만,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자연스럽게 연대하게 됩니다. 영화는 그들의 연대를 억지스럽지 않게 풀어내며, 실제 직장 내 동료 관계와 유사한 공감을 유도합니다. 이들의 팀워크는 단순한 사건 해결을 넘어, ‘여성 서사’의 본질적인 힘인 상호 지지와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특히, 셋이 함께 밤을 새우며 증거를 수집하거나, 회사를 상대로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회의 장면 등에서는 캐릭터 간 케미스트리가 극대화되며 영화의 몰입도를 높입니다. 각각의 캐릭터가 맡은 역할이 확실하고 유기적으로 작용해, 전체적인 서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사회 풍자와 90년대 배경의 현실성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단순히 개인의 성장 서사에 그치지 않고, 1990년대 후반 대기업 문화를 날카롭게 풍자합니다. 영화 속 기업문화는 회식 강요, 여성의 업무 한정, 직급에 따른 존중의 차별 등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익숙한 요소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단순히 과거 회상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에도 유효한 문제의식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입니다.
여전히 존재하는 유리천장, 반복되는 사내 권력 구조,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 등은 관객들에게 깊은 반성과 인식을 유도합니다. 또한 영화는 ‘토익 점수 600점 이상이면 정직원 승격 가능’이라는 황당하면서도 현실적인 조건을 통해 당시 사회의 비합리성을 유쾌하게 비틀고 있습니다. 이 조건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시스템이 사람을 어떻게 소외시키고 평가하는지에 대한 은유로 작용합니다.
시대 배경을 반영한 미술과 음악, 소품들도 주목할 만합니다. 워크맨, 녹음기, CRT 모니터, 당시 유행하던 패션 등이 복고풍의 감성을 더하면서도, 영화의 리얼리티를 강화하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서, 사회 구조적 문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결국 특정 시대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직장 문화와도 맞닿아 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 큰 울림을 줍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단순한 여성 중심 영화가 아닌,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와 사회적 풍자를 담은 작품입니다. 고아성, 이솜, 박혜수 세 배우의 케미와 진정성 있는 연기가 돋보이며, 직장 내 차별과 연대의 힘을 공감 있게 전달합니다. 현실적이면서도 유쾌한 이 영화를 꼭 한 번 감상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