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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에 감정 더한 감성 누아르 (다만악, 황정민, 액션)

by 불로거 2025. 10. 19.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포스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개봉일 : 2020년 7월 9일
개요 : 범죄 · 대한민국 · 108분
평점 : 8.55
관객수 : 435만명
출연 : 황정민 이정재 박정민 박소이 최희서 

 

 

2020년 개봉한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이정재와 황정민이라는 두 배우의 강렬한 만남만으로도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액션영화에 그치지 않고, 캐릭터의 감정선과 인간적인 고뇌를 더한 ‘감성 누아르’로 관객에게 오랫동안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 속 총성과 피의 흔들림 뒤에 감춰진 것은 폭력 그 자체가 아니라, 구원을 향한 절절한 외침이었다.

 

다만악 인남의 그림자, 이정재의 절제된 감정연기

이정재가 연기한 ‘인남’은 은퇴한 킬러다. 그는 마지막 임무를 끝내고 일본으로 도피해 조용한 삶을 살아가던 중, 옛 연인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휩싸인다. 더 큰 충격은, 자신에게 딸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인남은 아이를 구하기 위해 태국으로 향하고, 다시 피의 굴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인남이라는 캐릭터는 전형적인 복수귀나 액션 히어로와 다르다. 그는 피를 흘리지만, 영웅이 아니다. 죽음을 무릅쓴 액션보다는 감정의 결핍과 죄책감, 슬픔을 끌어안고 싸우는 인물이다. 그의 얼굴에 자주 등장하는 무표정, 그 안에 담긴 후회와 고통은 오히려 더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이정재는 말보다 표정과 눈빛, 그리고 숨결로 감정을 표현한다. 딸 앞에서 무너지는 장면, 마지막 비행기를 향해 터미널을 달리는 장면 등에서는 내면의 고통이 극적으로 폭발한다. ‘감정이 담긴 액션’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연기를 두고 하는 표현일 것이다.

 

황정민의 레이, 악마는 만들어진다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 ‘레이’는 황정민이 연기한 캐릭터로, 영화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담당한다. 형을 죽인 인남을 쫓는 사적인 분노와 복수심에 사로잡힌 그는, 영화 내내 극단적인 폭력성과 광기를 분출한다. 등장부터 남다르다. 화려한 머리색과 문신, 현란한 의상은 그의 정체성과 내면의 불안정함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레이 역시 단순한 ‘악역’으로 소비되지는 않는다. 그는 형제애라는 본능적 감정을 바탕으로 행동하고, 그 폭력의 밑바닥엔 상실의 아픔과 외로움이 도사리고 있다. 황정민은 이 인물을 단지 무자비한 괴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겪은 고통을 통해 ‘왜 레이가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득력을 제공한다.

두 인물 모두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이며, 이들의 충돌은 ‘누가 옳은가’를 가리는 싸움이 아니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다. 황정민의 연기력은 이 비극을 더욱 처절하고 생생하게 그려내며, 스크린을 장악한다.

 

총성과 고요함 사이, 액션의 온도 차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액션 장면으로도 주목받는다. 태국 방콕과 창마이 등 이국적인 배경에서 벌어지는 총격전과 추격씬은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박진감 넘친다. 특히 호텔 복도에서 벌어지는 근접 전투, 골목을 가르며 달리는 추격전 등은 동선과 속도감, 촬영 기법까지 완성도가 높다.

흥미로운 점은, 액션 이후의 여백이 영화의 감정을 더욱 배가시킨다는 것이다. 피 튀기는 전투 직후 찾아오는 정적, 총소리 대신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순간 등은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의 내면에 집중하게 만든다. 액션의 화려함과 감정의 절제된 서사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OST와 음향 설계도 감성을 강화한다. 배경음악은 때로는 멜랑콜리하게, 때로는 고조되며 인물의 심리를 따라간다. 특히 엔딩에 삽입된 황정민의 내레이션과 함께 흐르는 음악은 슬픔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잔향을 남긴다.

 

감성 누아르의 정수, 장르의 진화를 보여주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한국형 누아르의 진화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기존 누아르가 남성적인 폭력성과 조직 내 갈등에 집중했다면, 이 영화는 가족, 속죄, 인간적인 연대와 감정을 중심으로 서사를 확장시켰다.

이 작품은 피와 죽음이 난무하는 액션의 틀 속에 ‘살리고 싶은 사람’, ‘지켜야 하는 관계’라는 따뜻한 감정의 줄기를 심었다. 이는 최근 한국 범죄영화들이 나아가고 있는 새로운 방향성을 상징하며, 특히 장르적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감독의 연출은 인물 중심이다. 불필요한 설명 없이, 표정과 시선, 공간의 분위기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플래시백 없이도 인물의 과거가 느껴지며, 서사적 무게감을 감정으로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연출력은 호평받았다.

 

결론: 슬픔이 총성보다 오래 남는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단지 한 명의 복수극이나, 전형적인 암살자 스토리가 아니다. 이 영화는 감정의 여운이 깊게 깔린 정서적 누아르 액션물이다.

이정재와 황정민이라는 명배우들의 폭발적인 시너지는 스토리의 감정선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며, 장면 하나하나가 예술처럼 다가온다.

마지막 총알이 발사되고, 모든 소리가 멈춘 뒤에도 남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상처이며, 증오가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단순한 오락영화를 넘어, 깊은 울림과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한다.

만약 당신이 다음 영화를 찾고 있다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추천 리스트 가장 위에 올려야 할 작품이다.
감정이 있는 액션, 서사가 살아 있는 영화. 그것이 바로 다만악이다.